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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7월1일 [權泰鳴칼럼] 日本 안에서 숨쉬는 韓民族의 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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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풍장시 작성일26-07-01 16:48 조회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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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1일 [權泰鳴칼럼] 日本안에서 숨쉬는韓民族


高麗若光이야기.png


高麗若光이야기.png

 

에서 탄 택시가 동네어귀에 들어서자 낯이 익은 듯한山野가 눈앞에 다가선다.樹林鬱蒼한 뒷발치에 한가로운 모습의 작은 마을이 초봄의 따스한 햇볕에 노곤히 졸고있고 동네 앞을 흐르는 맑은 시내 너머로 이른 봄기운이 넓은 들판에 가득히 번져간다.日本사이따마(埼玉)히다까(日高)의 작은 마을 고마무라(高麗村)마을.東京에서 서북쪽으로50km밖에 되지 않는 거리인데도地下鐵汽車4번이나 갈아타는 바람에 한시간 반이나 걸려 목적지에 닿았다.호텔을 일찍 나와 서둘러電車를 탔다.비 올確率이 높다는 간밤의日氣豫報가 맘에 걸렸으나 다행이 가는 도중 무겁게 드리웠던 구름이 점차 걷히면서 마을에 도착할 즈음엔 파란 하늘에 햇볕이 제법 따사로워졌다.전날 내린 비로農村들녘空氣가 한결 맑아졌고爽快하기 그지없다.


고려신사.png

 

고마무라라는 이름이 붙여진사아따마현의高麗村高句麗人定着해서 이룬 마을이다. 700년을 이어오던高句麗가 서기668羅唐聯合軍에 의해 멸망하자高句麗의 많은貴族百姓僧侶들이日本으로 건너갔다.王族若光(日本名:고마노고시끼 쟈꼬)高句麗가 멸망하기 직전인6665월과10월 두 차례에 걸쳐 당시 긴박했던Asia情勢를 협의하기 위해朝廷外交使節團一員으로日本(大和朝廷)派遣되었다.두번째日本에 파견된若光歸國하지 않고日本東國地方(지금의關東地方)定着,서기703년에日本朝廷으로부터外國王族에게賦輿되는王氏姓을 받고日本조정의 관리가 되었다.그후716日本조정은駿河(시즈오까현),甲斐(야마나시현),相模(가나가와현),上總,下總(지바현),常陸(이바라기현),下野(도찌기현)일대에 흩어져 살던亡命 高句麗人1799명을 모아 무사시노(武藏野,지금의東京인근지역)移住시켜고마”(高麗郡)創設하고若光初代 郡長으로 임명하여 그 지역을 다스리게 했다.

 

   

天下大將軍.png

 

◆◆若光未開地開發에 힘써百姓들의 생활을 향상시키는 등 많은功積을 남겼으나 끝내滅亡高句麗땅으로 돌아가지 못하고異國땅에서많은生涯를 마쳤다.郡民들이 뒷날神社를 세워 그의德望稱訟하고 그을 기려高麗郡守護神으로 받들었다.지금의高麗神社는 그때創建神社.神社宮司는 지금도若光後孫들이를 이어오고 있다.高麗神社本堂 正門에는 우람한 흰大理石天下大將軍地下女將軍이 양옆으로守門將役割을 하고 있고 그 안으로高麗神社라고 쓰인懸板이 걸린 두 개의 큰 도리이(鳥居)가 있다.도리이란神社入口에 세워진 기둥문으로 속세와 신사본당을 구분하는 일종의 경계 구조물이다.주로 나무나 돌로 만들어지며 두 개의 기둥 위에 가로대가 얹쳐있다.


若光稻荷神社.png

 

高麗神社는 그 뒤10세기,大宮이라는稱號를 받아日本국내大寺院의 하나로 인정받게 되는 등 그位相勢力이 점점 강하게 되었다.高麗村高句麗人들은若光이래500여년26대에 걸쳐高句麗人 後孫끼리만婚姻했으나 그 뒤現地 日本인들과通婚하게 되었다.後孫 中에는 첫日本幕府인 가마꾸라(鎌倉)막부의家臣을 지낸 사람도 있다.


고려신사1.png


高麗郡이란名稱은 행정구역개편에 따라1896년 사이따마현 이루마(入間)統合되면서行政上의 이름은 사라졌으나 지금도高麗村,高麗神社의 이름은 그대로 남아高句麗綿綿이 이어지고 있다.高麗神社에서는新年祭를 비롯하여4월과10월의 사자춤 등다섯번의祝祭가 열린다.境內에는日本國家文化財와 사이타마縣文化財指定文化財寶物이 많다.高麗神社本殿縣文化財大般若經456高麗家 住宅國家指定文化財登載되어 있다.高麗家주택은代代高麗神社 宮司를 지내 온高麗氏舊住宅으로16세기 말에서17세기建立된 것으로 알려진 꾀 큰 규모의草家이다.


고려신사 약광.png

 

◆◆◆또 한 가지 소중한遺物高麗氏系圖原本이다.처음原本1259년 화재로燒失된 후 바로高麗氏 一族舊 臣下들이 모여 각 집안의 옛 자료 들을 기초로高麗氏系圖를 재편한 것이 현재 보존되어있는高麗氏系圖이다.옻 칠한 나무통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는 긴 두루마리의高麗氏系圖에는若光의 후예들이 걸어온 역사가 기록되어있다.高麗神社 境內에는神社외에도 작은殿閣에 모셔진若光高麗王廟若光王菩薩寺로 세워진 웅장한 규모의聖天院,阿彌陀堂,日本國家文化財聖天院 梵鐘,그리고 최근에造成在日韓人無緣之靈 墓地記念塔등이 조화롭게 잘 배치되어 있다.在日韓人無緣之靈경내 산비탈에 세워진高句麗 廣開土王,新羅29代太宗武烈王,高麗忠臣 鄭夢周,百濟王仁博士그리고師任堂 申氏의 커다란大理石 彫刻이 마치 그곳의守護神처럼慰靈 塔을 내려다보고 있다.

 

新羅29代太宗武烈王.png

   (高麗神社 境內에 있는 新羅29代太宗武烈王)

  

日本사람들이 섬기는이 모두 팔백만에 이른다고 한다.日本인들은 길을 가다가도佛像이나 무엇인가 모셔 둔 곳이면 무슨인지를 가리지않고 두손모아 예를 표한다.또한入學,就職,健康등의所願을 적은 종이를神社경내의 나뭇가지에 메어다는 단사꾸(短冊)와 작은 나무조각 에마(繪馬)등을 쉽게 볼 수 있는데高麗神社도 예외가 아니었다.在日居留民60만여명 선에 이른다.대부분2次大戰日本에 의해强制移住된 경우이다.이들도 이미4로 이어지고 있고 점차日本社會에 묻혀져가고 있어民族正體性유지가 앞으로의 과제로 남아있다.

 

申師任堂 朝鮮에서는 良妻賢母라고 한다.png

   (高麗神社 境內에 있는 申師任堂)


日本으로 건너간新羅,百濟,高句麗후손들은日本全域에 걸쳐地名이나神社,寺刹,日本語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그 흔적을 남기고 있으며 특히 현재 사이다마현의高麗村외에 오사까(大阪),도야마(富山),후꾸이(福井),효고(兵庫),미야자끼(宮崎),그리고 가나가와(神奈川)韓民族系 神社는 많은 참배객을 불러모으고 있다.우리부부가 찾았던 날이週中이라서일까觀光客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지긋한 나이의 사람들이 꽤 많이 눈에 띄었다.돌아오는 길은 택시가 들어오지 않아까지 들길을 걸었다.남자 빠른 걸음으로20분 정도의 길을 아내와 쉬엄쉬엄 걷는 바람에40여분이나 걸렸다.에 닿은 시간이 마침 점심때라귀퉁이 좁은 골목에 있는 허름한 라면집으로 들어갔다.우둥퉁한 모습의60代 後半夫婦無聊하니 앉아 있다가 반갑게 맞았다.생김새가 우리와 비슷한 게高句麗人후예가 틀림없다 싶었다. <>

2026-07-01權泰鳴 作成,서울商大58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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