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8월15일失鄕民들이 만든望鄕의 노래『恨많은大同江』을再照明한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풍장시 작성일26-08-15 08:51 조회23회 댓글0건본문
2026년8월15일失鄕民들이 만든望鄕의 노래『恨많은大同江』을再照明한다

最近,각종 미쓰트롯,가요경연대회등에서人氣固定Menu로서 등장하는, 1958년에發表된,『恨많은大同江』에 관련된 인터냇상에서 떠도는 정보를 검색,수집,정리해보았다.失鄕民들끼리 힘을 모아,망향의恨을 풀어주고,心琴을 달래주는 노래가『한많은大同江』이다.失鄕民의 망향의 그리움을 애절하게 표현한 노래로서『恨많은大同江』만한 노래가 따로 없다. 1950年代以後나온 가요중에서는拔群의名作임이 틀림없다. 1983년『이산가족 찾기』방송을 통해서도 실향민에게 이 노래만큼人氣를 누리고 많이愛唱된 노래는 없었다고 한다,大同江이란 단어는北韓全体를代表한다해도過言이 아니다.이것이 바로 이 노래가 만들어낸業績이라고 생각한다. 1958년,그러니까,休戰後5년이 지난 늦으막하게登場한望鄕의 노래가 최근,國內의 여러 트롯대회,가요경연대회에서 빠짐없이 애창되고 있다.南北分斷의38線, 1945년에美蘇가日本軍武裝解除를 위해各各 南北을分割占領한 것이始初다.그후1950~53년625戰爭의休戰으로 지금의休戰線이南北을 갈라놓고 있다.失鄕民세사람이,各各,作詞,作曲,노래를 맡아 만든 노래라고 한다,노래는孫仁鎬,作詞는野人草(김봉철),作曲은韓福男이라고 한다.세사람 모두失鄕民이다. 1958년에 만든 노래다.
◇◇◇◇◇◇◇◇◇◇◇◇◇◇◇◇◇◇◇◇◇◇◇◇◇

◆歌手:孫仁鎬(1926년~2016년)는 한국의 트로트 가수로,종교는 개신교(장로회)라고 한다. 1926년 평안북도 창성군에서 출생, 1946년 관서콩쿨대회에서1등을 차지하였고,심사위원의 권유로 월남하였다. 1946년KPK악단에서 가수생활을 했고, 1954년 작곡가朴是春( 1913~1996)에게<나는 울었네>곡을 받아 취입,크게 히트시켰다.영화녹음기사로1950년대에서1980년대초까지 녹음실에서 녹음기사로 활동했다.그후<비내리는 호남선>을 발표하였고, <울어라 키타줄>, <하룻밤 풋사랑>,등을 히트시켰고, 1957년 도미도레코드로 이전, <한많은 대동강>, <짝사랑>, <물새야 왜 우느냐>,등의 히트곡을 쏟아냈다.故鄕,北韓에 대한鄕愁,남북분단으로 찾아가지 못하는 아픔을 노래하는 내용이다. '모란봉'과'을밀대', ‘부벽루’도平壤에 있는名所다. 1950년대부터 영화녹음기사와 가수활동을 병행하였으나 단 한차례도 가수로서는 무대나 방송매체에 출연한 일이 없이 오직 음반취입만으로 가수활동을 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가수로 알려졌었다.영화녹음기사로서의 직업에 충실하기 위함이었고,연예인으로 활동하는 것은 손인호의 부인이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그는,간경화투병해 오다가2016년에 향년89세로他界하였다.

(乙密臺)
◇◇◇◇◇◇◇◇◇◇◇◇◇◇◇◇◇◇◇◇◇◇◇◇◇

◆作曲家:한복남(韓福男)(1919~1991)은 대중음악 작곡가이자 가수다.평남安州출신,安州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다 해방이후1947년 가족이 모두 월남,서울종로에서 양복점을 열었다가 가수로 데뷔했다. 1947년에 김해송이 주관하는KPK악단에 입단하였다.한국전쟁 이후,도미도레코드사를 창립하였으며,도미도레코드,라라레코드,아세아레코드,오아시스레코드 등에서 작곡가로 활동하였고,자신이 직접 부르기도 하였다. 1953년『恨많은大同江』을作曲하였다. 1991년 사망했다.향년73세.
◇◇◇◇◇◇◇◇◇◇◇◇◇◇◇◇◇◇◇◇◇◇◇◇◇
韓福男의代表曲:
앵두나무 처녀
빈대떡 신사
엽전 열 닷냥
처녀 뱃사공
오동동 타령
진주는 천리길
한 많은 대동강
백마강
경상도 사나이
◇◇◇◇◇◇◇◇◇◇◇◇◇◇◇◇◇◇◇◇◇◇◇◇◇

(野人草)
◆作詞家:野人草본명은 김봉철(1919~1999),황해도 박연출신,징용을 피하기 위해日本으로 갔다가,解放後, 1946년 귀국,釜山에 눌러앉았다.일본에서 음반제작사 하급직원으로 일한 경험을 살려,미도파레코드사의 녹음기사로도 일을 했다 부산에 정착한野人草는,많은歌詞作品을 남겼다.그중,특출한 것을 고른다면,가중 우리들의 귀에 익은 노래는, ‘공양미 삼백석’, ‘오동동타령’, ‘용두산 에레지’, ‘한많은 대동강’등이다.그는 어딜가나,여러 명소,풍경,산하에 대한 것을 메모를 했으며,歌詞에詩的 表現,잘도 담아내서,노래를 더욱餘韻이 남는 효과를 구사하였다.野人草는 노래가사 분야에서 크게 헌신했던 훌륭한作詞家였다.野人草는, <오동동타령>외에도1950~60년대에 제법 많은 대중가요 가사를 발표했다.또 작사 활동뿐만 아니라,부산에서 설립된 최초의 음반회사인 코로나레코드를1948년에 설립해 얼마간 운영했다는 점에서도,대중음악역사에 중요한 자취를 남겼다.그러나野人草에 관해서는 확인된 내용보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점이 더 많은 편이다.

(乙密臺)
【한많은大同江 歌詞】
한 많은 대동강아
변함없이 잘 있느냐
모란봉아 을밀대야
네 모양이 그립구나
철조망이 가로 막혀
다시 만날 그 때까지
아 소식을 물어 본다
한 많은 대동강아
대동강 부벽루야
뱃노래가 그립구나
귀에 익은 수심가를
다시 한번 불러 본다
편지 한 장 전할 길이
이다지도 없을 소냐
아 썼다가 찢어 버린
한 많은 대동강아
◇◇◇◇◇◇◇◇◇◇◇◇◇◇◇◇◇◇◇◇◇◇◇◇◇
①손인호-한 많은 대동강[가요무대] | KBS 19900122방송
https://www.youtube.com/watch?v=T0Lp5IUJUIM
②송가인,한 많은 대동강TV CHOSUN 230103방송
https://www.youtube.com/watch?v=YC11pDYESs8&list=RDYC11pDYESs8&start_radio=1
③아즈마아키(東亞樹) -한많은 대동강(恨みの多い大同江)|한일톱텐쇼21회
https://www.youtube.com/watch?v=VfxdcJl_6CM
2026-08-15, jgchoi作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