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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km·20km·마라톤 세계기록 보유자 폴라 래드클리프(Paula Radclif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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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영주 작성일 04-03-30 07:00 조회 10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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뛸 때마다 기록경신‘마라톤 여제’



여자 육상계의 ‘살아있는 전설’ 폴라 래드클리프. 마라톤뿐 아니라 10km와 20, 30km 부문에서도 챔피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마라톤광인 아버지와 함께 일곱 살 때부터 달리기를 시작해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기까지, 그녀의 스토리를 알아본다.



마라톤계의 ‘철의 여인’ 폴라 래드클리프(31). 데뷔 무대인 2002년 런던 마라톤에서 우승(2시간18분56초)한 그녀는 같은 해 10월 시카고 마라톤에서 다시 우승(2시간17분18초)했고, 이듬해인 2003년 4월 런던 마라톤에선 2시간15분25초라는 경이적인 세계기록을 세웠다.



이는 자신의 기록이기도 한 세계기록을 연거푸 경신한 놀라운 성과였다. 때문에 지금 세계 육상계는 그녀가 올해 아테네 올림픽에서 세울 기록을 주목하고 있다.



그녀의 달리기 재능은 마라톤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올 1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지난해와 2001년에 그녀가 로드 레이스(도로 경주. 트랙 경기와 구분됨) 부문에서 세운 10km(30분21초)와 20km(1시간3분26초) 기록을 세계기록으로 공인했다. 이로써 그녀는 마라톤을 포함한 거의 모든 장거리 부문에서 여성 세계기록 보유자가 됐다.



폴라 래드클리프의 성과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유럽 10km 챔피언, 영연방 체육대회 5,000m 챔피언, 세계 크로스컨트리 챔피언, 하프 마라톤 비공인 세계기록 보유 등 그녀는 현재 세계 육상계에서 명실상부한 ‘살아있는 신화’로 군림하고 있다.



아버지는 마라톤광, 남편은 육상선수



폴라 래드클리프는 1973년 12월 영국 체셔(Cheshire)에서 양조회사 중역인 아버지와 교장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마라톤을 즐기는 아버지를 따라 일곱 살 때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3시간30분의 풀코스 완주 기록을 가진 아버지는 그녀를 데리고 숲으로 가서 크로스컨트리 경주를 하게 했다.



그녀가 11세가 되었을 때 가족이 모두 베드포드(Bedford)로 이사했는데, 그 주변의 들판은 자유롭게 달리기에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했다. 그녀는 이때부터 베드포드 육상클럽에 들어가 본격적인 육상 훈련을 받았다. 그때 그곳에서 만난 코치 알렉스 스탠튼은 지금도 여전히 그녀의 개인 코치로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다.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두각을 나타낸 것은 아니었다. 학창시절 처음 참가한 경기인 영국 크로스컨트리 12세 이하 챔피언십에서 그녀의 성적은 299등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녀는 결과에 만족했고, 성실한 훈련을 거친 결과 다음해 같은 대회에서 4등을 차지했다.



학교 간 경기들을 통해 빠르게 실력을 향상시킨 그녀는 1992년 보스턴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 크로스컨트리 챔피언십에서 처음으로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그 이후 수많은 우승을 차지했지만, 아직도 그녀는 첫 우승의 순간을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녀의 보스턴 우승 이후, 코치 알렉스 스탠튼은 계속 그녀를 맡아야 할지 자신 없어했다. 그녀 수준의 학생을 지도해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망설임을 눈치챈 그녀는 “그럼 우리나라에서 당신 말고 누가 나를 자신 있게 경기에 출전시킬 수 있죠?”라고 물었다.



그는 “모르겠다”고 대답했고, “그럼 계속 코치를 맡아달라”며 그의 손을 붙들었다.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자신의 코치 알렉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 적이 있다.



“알렉스의 특별한 점 중 하나는 자신의 훈련 방식을 굳게 믿는다는 거예요. 그는 ‘이봐, 왜 이 훈련을 하느냐고 묻지 마. 난 단지 이것이 옳다는 확실한 감이 있을 뿐이야’라고 말하죠. 그러면 나는 그의 말을 따라요. 그의 말이 옳았던 적이 아주 많기 때문이죠.”



그녀가 지금까지 서로 연락하고 있는 어린 시절의 친구들도 모두 달리기를 통해 사귄 친구들이다. 12세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줄곧 영국 내 우승팀에 있었던 폴라는, 당시 만난 친구들과 아직까지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그들끼리는 서로 경쟁적이어서 연습 삼아 시작한 달리기가 경주로 바뀐 적도 많았다. 하지만 달리기를 좋아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그들은 여전히 ‘아주 똘똘 뭉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녀의 인생이 달리기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는 건 2000년 4월 결혼한 남편 개리 러프를 봐도 알 수 있다. 1,500m 부문에서 세계적인 선수였던 그와 그녀는 90년대 초, 영국의 러프보로 대학을 함께 다니며 처음 만났다. 다른 대학생 연인들처럼 두 사람도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가, 1997년부터 서로 깊이 신뢰하는 관계로 발전해 결혼에 골인했다.



“폴라와 함께 훈련하면 때때로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는 남편 개리 러프는, 학창시절의 폴라를 떠올리면서 “러프보로 대학시절 수많은 남자 선수들이 그녀와 같이 뛰려고 하지 않았다. 그녀가 너무 빠르기 때문이었다”라고 회상했다. 달리기는 여전히 즐기지만 더 이상 경기에 참가하지 않는 그는, 이제 아내 폴라의 충실한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다.



육상선수 출신의 남편이자 매니저는 엘리트 선수의 생활뿐 아니라 사소한 감정까지 이해한다는 점에서 그녀에게 더할 나위 없는 파트너이다.



끊이지 않는 약물 복용 구설수



“달릴 때는 오로지 내 시간이에요. 달리기는 항상 하는 거죠. 다른 것들과 다르거든요. 아무도 쫓아와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참견하는 사람이 없어요. 오직 내 자신의 느낌과 어디로 가고자 하는 목표만이 있죠. 달리기는 내게 생각할 기회를 줘요. 대학에서 집중적으로 공부하던 때에도 하루 일과가 끝나면 머리를 식히기 위해 달리곤 했죠. 책상에서 풀 수 없었던 문제들을 달리기를 통해 푼 적이 많아요.



그 점이 참 중요해요. 달리다 보면 최선을 발휘하는 순간이 있어요. 그게 달리기 소질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순간적인 느낌을 즐기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죠. 나는 내가 무언가에 소질이 있다는 것, 나아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을 즐긴답니다.”



자신에게 달리기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폴라 래드클리프가 한 대답이다.



마라톤을 좋아하는 아버지 아래 자라나 육상선수 출신인 남편까지 만난 그녀에게, 달리기는 천명(天命)처럼 보인다. 타고난 재능도 있었지만, 혹독한 훈련도 서슴지 않았다. 고질적인 기관지염에 시달리면서도 트랙으로 나가 고문 같은 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해 신음하며 달렸다. 남성을 연상시키는 근육질의 육체, 선글라스를 쓴 채 찡그리며 달리는 그녀의 얼굴에서, 그녀의 달리기 세계는 고통과 땀, 힘든 노동의 세계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녀의 진정한 경쟁자는 언제나 시계였다. 하지만 경기의 팽팽한 긴장감 또한 즐긴다. 그녀는 필요하다면 누군가를 추월하고 싶어하는 건 달리기 선수로서의 당연한 욕망으로 생각한다. 이런 승부욕 또한 그녀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한 원동력이다.



육상선수로서 그녀는 약물 복용 반대 운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사실 그녀만큼 약물 복용 루머에 시달린 선수도 없다. 남자 못지않은 근육질 체형에, 워낙 눈에 띄는 성적을 올렸기 때문이다. 자청해서 다른 선수들보다 더욱 잦은 도핑 테스트를 받아도 소문은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는 누군가 자신의 물병에 약물을 탈지도 모른다는 노이로제에까지 시달렸고, 그녀의 남편 개리가 파수꾼 역할을 해야 했다.



그녀는 약물 복용에 반대하는 뜻에서 한동안 러닝 셔츠에 붉은 리본을 달고 뛰기도 했다. 또한 그녀가 2001년 에드몬튼 경기장에서 러시아 선수 올가 예제로바를 겨낭해 ‘EPO 복용자 퇴장’이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한 사건은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이 일에 대해 언론은 지지의 박수를 보냈지만, ‘예제로바 마녀 사냥’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의 입장은 단호했다. “특정 인물에 대한 마녀 사냥이 아니라, 육상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를 회복시키기 위한 결단”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 폴라 래드클리프는 <러닝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린 선수들이 운동을, 특히 육상을 하도록 격려하고 싶어요. 하지만 그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적을 올린 뒤엔 약물을 복용하지 않으면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부모들이 자기 아이들에게 육상을 권하겠어요?”



그렇다고 그녀가 달리기에만 치중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폴라의 남편은 그녀가 매우 확고한 육상선수지만 “쳇바퀴만 돌리는 우리 안의 햄스터 같지는 않다”고 말한다. 뛰어난 스포츠 우먼이지만 결코 스포츠로 소모되지 않는, 충만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



러프보로 대학시절, 학업에도 열심이었던 그녀는 졸업할 때 유럽학에서 우등상을 받았다. 또한 프랑스와 독일어, 스페인어 등 다양한 언어에 능통해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에서 발간하는 잡지의 번역 일을 하기도 한다. 책읽기를 좋아해 로맨틱 스릴러물에서 추리소설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으며, 팝 음악과 영화를 즐기기도 한다.



그녀는 먹는 것을 워낙 좋아하고 또 아주 많이 먹는다. 초밥과 초콜릿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레스토랑에서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는 것도 즐긴다. 육상선수라는 직업상 식이요법 관리사와 상담을 하긴 하지만, “구운 콩 요리를 제외하곤 거의 모든 음식을 즐긴다”는 것이 남편 개리의 말이다.



삶을 풍요롭게 만끽할 줄 아는 그녀의 이런 풍모는, 혹 운동선수로서 수명이 끝나게 된다 해도 그녀가 자기 삶에 아주 잘 대처해 나갈 것이란 예감을 품게 한다. 폴라 역시 “은퇴한다면 당연히 내 야심을 쏟아 부을 수 있는 다른 분야를 찾을 것”이라고 말한다.



폴라 래드클리프가 2000년에 하프 마라톤에서 연이어 우승을 차지하자, 사람들은 그녀가 마라톤에서도 새로운 기록을 수립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시작했다. 이런 기대에 대해 그녀는 신중하게 반응하는 한편 은근한 자신감도 표출했다.



“성급하게 마라톤에 뛰어들 생각은 아니었어요. 마라톤을 할 만큼 몸이 충분히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이죠. 정신적으로도 마라톤을 하고 싶어야 해요. 만약 내가 ‘저건 너무 먼 거리야. 저렇게 멀리 뛰고 싶은지 잘 모르겠어’라고 생각한다면 마라톤을 할 때가 아직 아닌 거죠. 알렉스 코치는 때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이미 10km를 충분히 뛰었고, 마라톤 훈련을 할 기본기도 갖추고 있었어요. 내가 처음 훈련을 시작한 이후로, 훈련의 강도는 점점 더 세졌어요. 하프 마라톤을 잘 끝냈다면 다음 단계는 자연히 마라톤이죠.”



아테네 올림픽의 최대 기대주



2002년 데뷔 무대인 런던 마라톤에서, 그녀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당당히 여자 세계기록을 갈아치우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6개월도 채 안 돼 시카고 마라톤에서, 다시 2003년 런던 마라톤에서 자신의 세계기록을 깨면서 우승을 차지해 ‘마라톤 여제(女帝)’라는 칭호를 얻게 된 것이다.



오는 8월 아테네 올림픽 스타디움으로 마지막 힘을 다해 뛰어들어올 폴라의 모습, 이는 마라톤 팬들뿐만이 아니라 그녀 자신도 가장 기다리고 있는 광경일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녀가 또 한 번 여자 마라톤의 역사를 새로 쓰기를 바라면서.



폴라 래드클리프는 인생에 대한 확고한 가치관과 믿음을 가지고 있다. 언젠가 그녀는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갈 필요를 느끼지는 않지만, 나만의 굳은 믿음과 도덕을 가지고 있다”면서 “뿌리는 대로 거두는 법”이라고 말했다.



바로 이 말에 달리기와 인생에 대한 그녀만의 통찰이 담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또한 그녀의 인생 앞에 다가올 무언가를 암시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정리·고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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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멤버십 러닝 전문지 4월호에서 옮긴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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