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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선의 눈물-발행인 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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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영주 작성일 05-01-06 04:00 조회 19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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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Focus Marathon 2004년12월호 발행인 편지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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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r's Letter] 완주선의 눈물



풀코스 완주 뒤에 눈물을 경험한 마스터스들이 많을 것이다. 나도 처음 마라톤을 뛰고나서 그 ‘눈물’이란 것을 흘린 적이 있다. 처음에는 왜 눈물이 나는지 황당했다. 지금도 그 설명이 쉽지 않다. 아무튼 스스로 뭔가에 감격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42km가 조금 넘는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는 출발선에 선 자신의 모습을 상상만 해도 남다른 감회에 젖곤 했다. 더구나 완주선을 통과해서 당당히 메달을 목에 건 모습은 생각만 해도 흥분되는 일이 아닌가. 그래서 첫 완주는 그만큼 인상 깊은 자국을 뇌리에 각인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풀코스 완주라는 오랜 갈망이 드디어 실현됐기 때문일 것이다.



내 첫 풀코스 도전의 경험은 ‘완주선의 눈물’을 포함해서 지금도 또렸하다. 그리고 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되는 것 같다. 출발선의 설렘을 뒤로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거대한 무리에 끼여 달릴 때는 제법 주위에도 신경이 쓰인다. 완주를 못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떨쳐 버리기라도 하듯 큰소리로 웃기도 한다. 그만큼 힘이 넘쳐나는 구간이었다.



그러나 10km쯤 지나고부터 다들 조금은 조용해졌던 것 같다. 달리는 선수 사이의 간격도 어느 정도 일정하게 됐다. 그쯤 되면 각자가 자기 페이스를 찾은 시점이기 때문이다. 내 경험 속의 풀코스는 10km 지나서부터 하프 사이의 달리기가 가장 기분이 좋고 몸상태도 좋다. 나중에 완주 횟수가 많아지자 이 사이 어딘가에서 이른바 ‘러너스 하이’를 느끼기도 했다. 아무튼 이 구간을 달릴 때는 ‘완주 포기’ 같은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르지도 않는다.



하프∼30km 사이에서 나는 비로소 완주를 방해하는 복병의 그림자들을 보기 시작한다. 상상하기 힘든 돌발 사고가 일어나든가, 예상됐던 일이 나타나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아무리 빨리 달려도 아무렇지도 않던 무릎 뒤쪽에 쿡쿡 쑤시는 통증이 나타나기도 하고, 대회 몇 주 전에 입은 부상의 통증이 재발해 이대로 더 달리다가는 치명적인 부상으로 연결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머릿속을 어른거린다. 발바닥이 화끈거리면서 쓰리기 시작하든가 전날 먹었던 음식물이 잘못됐는지 뱃속이 편치 않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아직 주행을 포기하게 만드는 본격적인 유혹들은 아니다.



정작 참을 수 없는 주행 포기의 유혹은 이른바 ‘진짜 마라톤’이라고 부르는 30km 이후 완주선 사이에서 진가를 발휘하며 맹위를 떨친다. 이 사이의 유혹은 많을 뿐 아니라 다양하다. 그리고 하도 강렬하고 설득력이 있어서 완주선을 향해 달리는 자신이 무모하고 야만적이며 맹목적으로 고집만 피우는 우둔하고 어리석은 인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마라톤을 ‘무념무상’으로 달린다고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완주의 일념’으로 달린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은 내가 이해하기 힘든 말이다.



내 경우는 좀 과장하자면 정작 ‘일만 가지나 되는 주행 포기의 유혹’에 시달리면서, 아니 이런 유혹들을 ‘처절하게’ 뿌리치면서 달린다고 하는 편이 맞을 정도로 많은 생각들을 하면서 달리기 때문이다. ‘진짜 마라톤’ 구간에 들어서서는 발바닥, 발목, 무릎, 고관절을 포함한 하체의 고통뿐 아니라 어깨, 가슴, 등, 배 등 상체의 고통도 참을 수 없는 지경에 도달한다. 그 고통이 심하면 심할수록 여기서 달리기를 중단할 ‘말이 되는’ 이유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에 떠오른다. 당장 달리기를 그만두더라도 내 주위의 모든 이들 또는 내 자신을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는 일만 가지 이유들이 머릿속에 저절로 나타나더라는 말이다.



주행 포기의 이유들이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고통을 회피하는 방법을 찾아내려는 본능의 작용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런 유혹들을 물리치고, 드디어 완주선을 통과했을 때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완주선의 눈물’이란 물론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자기를 붙잡고 끈질기게 늘어지는 일만 가지 유혹들을 이기고 완주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대견해하는 ‘자축의 눈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발행인 겸 CEO 정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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