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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0 차 상산회 산행기(중국 태산/라오산 :2005.7.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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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승기 작성일 05-07-29 13:25 조회 17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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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 출발 (7월 15일)



중국의 태산과 라오산 등산을 위해 인천 공항에 모인 산우는 14명.

현지에서 합류예정인 재용과 부익을 합하면 16명이다.



참석자: 최해관, 김호경, 이종구, 이종기, 이종원, 김원탁, 권중배, 이명인,

김재윤, 이대용, 김상희, 윤건수, 엄형섭, 김재용, 김부익 그리고 필자.



수개월간 추진되온 100차 project 가 드디어 실현되는 순간이다.

13시 55분 발 제남 행 KE847을 타고 제남에 도착.

한 시간여의 비행 끝에 제남 공항에서 재용의 환영을 받는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완전히 불볕 더위. 제남이 중국의 4대난로 도시중 하나란다.



제남은 중국의 역사문화도시로 황하문명발상지의 하나이다.

춘추시대부터 진, 송, 명, 청을 지낸 2600년의 역사문화도시로, 산동의 성도다.

제남은 대륙성기후에 속해 연평균 기온이 14도로 따뜻하고,여름에는 다른 어느 도시보다도 무덥다.

5월만 되어도 땀이 흐를정도의 더위가 시작된다.

또 제남은 물이 풍부한 도시로 알려져 시내에서는 샘물이나 호수가 볼거리 중의 하나다.



첫 관광지로 제남시 북쪽에 위치한 황허강으로 향한다.

황허강은 바닥이 제남시보다 3m가 높아서 지상하(地上河)라 불리며,

이곳이 범람하면 북경시까지 위험하여 제방은 높은 돌둑으로 되어있다.

재용이 준비한 현수막을 앞에 두고 기념촬영.



호경이 계단을 내려가 황허강에 손 담그려다 온몸을 황허강에 담그는데

본인은 산우를 위해 손에 황허강 물을 담아 오려다 미끌어졌다는데....

역시 친구를 위하는 길은 쉽지 않은 듯 하다. 더운 날씨에 호경은 홀로

뜻하지 않은 시원함을 맛본다. 황토맛사지까지 덤으로.



<황허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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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시경 황허강을 출발하여 태산이 위치한 태안시로 향한다.

샘물이 풍부하여 길가 곳곳에 연꽃밭이 보인다.

20여 분이 지나니 산들이 보이는데 석회석과 바위로 이루어져 나무가

별로 없는 벌거숭이가 대부분. 그나마 여기저기 파헤쳐져 있는 곳이 많다.

태산 국제호텔에 17시 30분에 도착.



잠시 휴식후 태안시 중심가 화교호텔내 식당에서 18시 30분 경 만찬.

앉는 좌석에 따라 음식 서빙 순서가 정해지는데 일희일비가 뒤따르네.

재용의 배려로 중국 식단에 김치가 오르고 맥주와 백주로 만찬은 무르익어

가는데 음식은 쉼이 없이 오르고, 화제는 정치, 경제, 사회, 여성문제까지

오르내리고,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대한 한국 정부의 무관심에 대한

질타도 한 몫한다. 수없는 건배속에 중국에서의 첫밤은 깊어만 간다.

만찬 후 호텔에 도착하여 일부 산우는 12 시가 넘도록 위스키에 더 취한다.



<만찬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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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 태산(泰山)(1545 m)에 오르다.



태산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된 해발 1,545m의 고산으로

화산, 황산에 이어중국에서 3번째 높지만 역사 속에 언제나 등장하는

천하제일 명산이다. 주변의 산맥과 이어진 것이 아니라 평지에 산이

우뚝 서 있는 형세라 신기하다.



고대에는 태산이 동방 세계를 상징하고 天神의 거처라고 간주했으며

사회 안정, 나라 번창, 민족 단결의 심볼이었다. 역대 황제, 신하, 명인, 일반 백성이든

모두 태산을 우러러 보고 크고 높음, 튼튼함, 존엄, 진취, 불굴정신의 상징물이었다.

태산 등정은 간난신고를 이겨내고 자아를 초월하는 뜻으로 가장 영광스러운 일로 생각되었다.



중국 고대의 황제들이 태산을 하늘 아래 가장 높은 산으로 하늘의 자손으로서의

황제가 당연히 태산에 올라가서 하늘에게 감사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여 "封"이란 제사를 지낸다.

그리고 태산 밑에 梁父라는 곳에서 토지 地神에게 "禪"이란 제사를 한다.

둘이 합쳐서 "封禪"이라고 한다. 歷代 황제들이 모두 吉日을 택하여

태산에 와서 封禪 행사를 하곤 했다. 진시황은 중국 첫번째의 황제로서

처음으로 태산에 와서 封禪 제사를 했던 황제이며 그후 71명의 황제가

그 뒤를 따랐다 한다.



그리고 수많은 문인들이 태산에 올라가서 천추만대에 길이길이 전해지는 시문을 남겼다.

옛날에 공자가 태산에 올라가서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아보이구나"라고 감탄했다 하며

태산을 한번씩 오를 때마다 10년씩 젊어진다는 재미있는 전설도 있다 한다.



태산은 알게 모르게 우리 일상사에 많이 인용되는 산이다. 예를들면,



티끌 모아 태산.

갈수록 태산.

걱정도 태산.

입이 태산 같이 무겁다.

태산을 알아보지 못한다.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

또한 어느 분야의 일인자를 태두(泰斗)라고 한다.



07시 40분에 호텔을 출발하여 천외촌에서 중천문까지 가는 버스를 갈아탄 시간이 08시 20분.



<태산 입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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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은 처음부터 오를 수도 있으나 시간 관계상 중천문까지 버스로

이동하여 중천문에서부터 정상까지 등산하는 것이 보통이다.

태산의 고찰(도교)인 죽림사를 지나, 중천문에 08시 40분에 도착하여

재용이 준비한 지팡이와 수건을 들고 08시 50분에 산행 시작.



길은 거의 대부분 돌계단으로 되어 있는데, 가이드는 그 계단이 6666개라 한다.

다른 문헌에 보면 7000여 개로 되어 있다는데, 중요한 사항은 아니다.

돌계단을 오르다 올려보면, 까마득히 높은 곳에 남천문이 보이는데,

그곳까지 이어지는 돌계단이 한눈에 들어오니 기가 질린다.

이토록 많은 돌계단을 어떻게 놓았을까?

그러고 보니 만리장성을 쌓은 민족다운 생각이 든다.

갈수록 태산인가! 걱정도 태산인가?



<까마득한 남천문과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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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계단을 50여개나 올랐을까 이내 하늘을 맞이한다는 영천문이 서있고 짧은

거리였지만 흙길도 나있다.

하지만 운보교(雲步橋)를 건너자 나타나는 돌계단의 경사는 아찔할 정도이고

이 계단을 오르니 오송정(五松亭)정원에 오대부송(五大夫松)이 기다리고 있다.

이 오대부송은 진시황이 봉선을 지내기 위해 산을 오르다가 큰 비를 만나

소나무 아래서 비를 피했다고 하는데, 후일 진시황은 오대부라는 벼슬을

소나무에게 내려 고마움을 표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소나무는

청나라 때 보식된 것이란다.오대부는 24작위중 아홉번째 해당된단다.



오대부송을 지나 좀더 오르면 승선방에 다다른다.

승선방은 사바세계와 천국의 경계선이라고 하니 우리는 이제 신선이 되어가고 있다는 말이렸다!



<승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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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실력에 따라 일행은 3등분 되는데..

호경, 해관, 명인이 앞서고 발목이 안 좋은 재윤은 쌍지팡이 들고 고생이 심하다.

돌계단 옆 계곡에는 더위를 식혀주는 물이 흐르고 가끔씩 수건을 적셔대며

더위를 달래보나 그나마 잠깐. 일행은 지쳐가지만 끊임없이 쉬기를

반복하며 태산을 오르고 또 오른다.오늘 하늘 아래 뫼라는 것을 증명 해야한다.



<돌계단 옆 계곡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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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중에 재용의 배려로 재용의 친지 여럿이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하여

같이 오르는데 감동이다. 드디어 10시 30분에 남천문에 도착하여 기념 촬영.



<남천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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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천문을 통과하니 이젠 정상이 얼마 멀지 않다.이곳 정상부근에는 가게가

엄청 많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풍경이다. 허기야 호텔까지 있다니.

재용이 미리 준비한 맥주, 커피, 복숭아, 오이, 수박으로 일행은 갈증과 피로를 푼다.

우리의 도착 시간에 맞춰, 미리 준비한 태산 정상에서의 감동의 선물이다.



<피로를 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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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한 휴식 후 천가(하늘로 가는길)를 지나 정상의 옥황정을 향해 출발.



<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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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기에 바쁜 원탁이 오늘 따라 더욱 위대해 보인다.

감히 그 누구가 원탁의 희생을 따를 수 있을 것인가?

공자를 모신 사당을 지나 서신문을 통과하여 완만한 계단을 올라 양귀비 남편을 만난다.

양귀비 남편 당 현종이 직접 쓴 “紀泰山銘” 축문 앞에서 기념촬영.



<”기태산명”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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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후 11시 40분에 옥황정에 선다.

옥황정이라고 쓴 건물 안쪽에 정상을 알리는 표지석이 서있다. 태산이 분명 하늘 아래 뫼임을

증명하는 순간이다.

표지석 주변에는 자물통과 붉은 띠가 걸려 있고, 또 앞에서는 사람들이 기다란 향불을

꽂아 놓고 기도하는데 열을 올린다.

붉은 띠는 온 가족에 복을 가져다주고 수효를 알 수 없으리만치 많은 자물통들은

집안의 복이 나가지 않도록 잡아둔다고도 하고 연인의 헤어짐을 막는다고도 한다나!!

표지석의 사면에는 사당이 마련되어있는데, 중앙에 위치한 사당의 안쪽을 들여다보니

옥황대제가 모셔져 있다.



<옥황정 정상 표지석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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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황정을 나와보니 반대편 계곡으로부터 운무가 올라오는데 금일 드디어

산우 15명이 태산에서 신선이 되는가 보다. 운중15선(雲中15仙) 이라!

12시 정각에 신선이 된 산우들이 바위에 앉아 정상주를 들며

건배를 곁들이니 취선이 된다.



<운무와 雲中醉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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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설에 의하면, 이 곳에 올라 운무와 함께 비를 맞으면 대권을 잡는다 한다는데.

그 누구는 인연이 없어 비를 맞지 못해 대권 도전이 물거품이 되었다 하니 맞는

얘긴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의 대통령도 거의 대부분 이곳에 올랐다 한다.



12시 30분에 정상에 위치한 신게빈관에서 점심을 한다.

정통 중국식에 산나물, 산토끼, 버섯산채, 전갈 요리, 빙어 튀김이 더 곁들여진다.

곁들여진 백주에도 취선은 더 이상 취하지 않는다.

다만 태산에 빠져, 재용에 빠져 흔들릴 뿐이다.



<전갈요리와 식당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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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시 30분에 케이블카로 중천문으로 하산.

때맞춰 운무가 케이블카를 감싸고 돈다. 신선이 하강하니 운무가 뒤따르네.

14시 30분에 하산을 완료하여 신선놀음은 라오산으로 미루고 곡부로 출발.



셋 : 공자를 만나다 (7월16일)



곡부로 향한지 30여분이 지나자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억세게 퍼붓는다.

태산 등정 후 비를 맞아도 일설은 효력이 있다는데, 산우 중 그 누군가 큰 꿈을 이루려나!

15시 50분에 곡부에 도착. 갑작스런 비로 도로는 수로가 되어있다.

퍼붓는 빗 속에서 공묘에 들러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데 빗소리로 잘 들리지도 않는다.



공묘는 북경의 고궁, 대만의 대묘(垈廟)와 더불어 중국 3대건축이라 불리며 노(魯)나라의

애공(哀公)이 공자 사후 1년에 건설한 사당이다.

처음에는 공자가 제자들에게 강의하던 행단에 대성전(大成殿)을 세운것으로 시작해

그후 역대의 황제가 기부나 희사를 계속하여 현재의 규모는 명청대에 완성된 것이다.

중국 각지에는 크고 작은 여러개의 공묘가 있지만 이곳 곡부의 공묘는 공자의

고향에 지어진 것으로 규모가 제일 큰 것으로 전체의 길이가 약 1㎞ 남짓하며,

면적은 약 22만㎡로서 전체 건물의 방의 개수가 466개에 이른다.



대성전의 높이가 24.8m 인데. 사방 1km 이내에는 이 높이 이상의

건물은 짓지 못한다 한다. 이 곳에는 공자를 기리는 역대 황제들의

비석이 10여 개가 있는데 대부분 문화 혁명 때 홍위병에 위해 훼손이

되었으나 주원장의 비석만큼은 그 출신이 서민이라 훼손 당하지않았다 한다.
분서갱유시 상당량의 공자 관련 서적을 숨겨 화를 면했다는 로벽도 이곳에 있다.

대성전 앞에 섰을 때 비는 더욱더 세차지고 필자는 필사적으로 대성전을 카메라에 담았다.



<대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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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묘를 나와 공부로 향한다.

공묘의 오른편에 위치한 공부는 공자의 자손들이 대대로 살아온 장원으로 1038년에 세워졌다.

공부는 또 연성공부(衍聖孔府)라고도 불리며, 현재의 모습은 명,청 양대에 걸쳐 완성된 것이다.

이곳은 다소 엄숙한 분위기가 감돌며 서로(西路)에는 객실, 동로(東路)에는

공씨가문의 묘지가 있고, 중로(中路)에는 전반부의 관공서와 후반부의 주택과

화원으로 나뉘어 자리잡고 있다.

이곳의 면적은 16만㎡에 이르며 방은 463개나 될 정도로 광대하고 화려한 장원으로

당시 공씨 가문의 권력과 규모를 가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이다.

78대 손까지 최근 이곳에 살았다 한다.



공림은 곡부의 북쪽으로 1.5km 떨어져 있는 곳에 있는 공자와 그 자손들이 묻힌 묘소다.

이 곳의 묘가 약 2만기, 담장둘레만 7.25km로 세계최대의 씨족묘지라 할 수 있다.

곡부시의 북쪽을 따라 1km 정도 숲길을 지나면 "지성림(至聖林)"이라는 현판이 걸린

공림의 대문이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공림이 시작되는데, 공림이라는 이름은 수많은

묘비의 비석이 숲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공림의 정문인 지성림방(至聖林坊)이 있고 여기서부터 이림문(二林門)까지

떡갈나무 숲이 길게 이어진다.



공자의 분묘는 향전 뒷쪽에 있는데 "대성지성문선왕묘(大成至聖文宣王墓)"라고 씌어져 있다.

명성에 비해 그리 화려하지는 않고, 돌보지 않은 듯 풀이 우거져 있으며 무덤 가운데

거목이 자라고 있다. 이렇게 공자의 묘를 돌보지 않는 이유는 중국의 대 사상가인

공자의 무덤에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다는 중국인들의 신념때문이다.

또 공자의 묘 옆에는 공자의 아들 묘(鯉)의 무덤이 있으며, 그 앞쪽에 공자의 학문을 계승한

손자 자사(子思)의 묘가 위치하고 있다.



17시30분에 ‘취리빈관’에서 공부연 만찬. ‘유가문화주제주점’ 이라는데 명함 뒤에

이런 글귀가 쓰여있다.



“不 吃 孔 府 宴 , 枉 來 曲 阜 游 ,



“곡부에서 공부연을 맛보지 않으면,아무것도 아니하고 돌아가는 것이다” 라는 뜻인가?



곡부에서 제일가는 유가문화전통 음식점이라는데, 한국 대통령 사진 몇몇이 벽에 걸려있다.

19시에 곡부 출발, 곡부 시를 벗어나 제남에서 태산, 곡부까지 우리에게 수많은

감동을 안겨준 재용 및 그 친지들과 아쉬운 헤어짐이 있었다.

영원히 기억될 아름다운 감동의 연속이었던 이틀간의 여정이었다.

폭우로 곡부의 사진이 별로 없어 아쉬움이 조금 남았을 뿐.



넷 : 청도와 라오산(1133m) (7월 17일)



청도는 중국 산둥성[山東省] 동부에 있는 시.

청도는 원래 작은 어촌이었다가 송(宋)나라 때 시선사(市船司)가 설치되면서

무역항으로 발전하였고, 1898년 독일이 조차(祖借)하여 군항 및 상항(商港)으로서

근대 시설을 정비하였다. 제 1 차세계대전 중에는 일본이 점령하였으며,

1922년 워싱턴회의로 중국에 반환, 30년에 시가 되었다.

칭다오맥주로도 유명하며 경치가 좋고 문화유적이 많아 관광지·휴양지로 이름이 높다.



여행사의 횡포로 청도의 여정 호텔이 취소되어 우여곡절 끝에

라오산 근처 방갈로에 자리잡은 시각이 새벽 3시경.

피로한 몸을 이끌고 숲 속 방갈로에서 운치 있는 하루 밤을 보내게 된다.

그나마 늦게까지 기다렸던 부익과 친우인 양사장이 없었다면 길가에서 밤 새울 뻔 했다.



피로한 탓인지 잠도 설치고 10시 30분에야 라오산으로 출발.

산동반도 서남쪽의 청도시 동쪽에 있는 라오산은 태고대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봉인 거봉(巨峰)의 해발은 1,133m이고 그 동쪽은 라오산만이고 남쪽은 황하(黃海)이다.

기암 기봉들이 바다를 이루고 산, 바다, 산림, 하늘이 함께 어우러져

“해상명산제일”로 불린다. 저명한 도교(道敎) 성지이며 국가 중점 명승지이다.

고대인들은 ‘신선의 저택’(神仙窟宅, 靈異之府)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한다.



11시에 버스를 갈아타고 11시 20분 케이블카 타는 곳으로 이동한다.

11시 35분에 760m 고지에 전원 도착. 때 맞춰 운무가 우리를 감싸는데

일행은 다시 신선이 된다.



옛말에 ‘태산의 구름이 아무리 높아도 동해의 라오산만 못하다’(泰山雖云高 不如東海)라는

말이 있단다.



<케이블카 타는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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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산 정상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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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부터 정상까지 태산과 마찬가지로 돌계단이 이어지는데

태산에서의 혹독한 시련에 주눅이 먼저 드네.

쉬고 오르기를 반복하며 선천교를 지나 정상 및 영기봉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10분 경.

라오산 정상에는 레이다 기지가 있어, 오르지 못하고 정상을 가운데 두고 한바퀴

도는 코스에 도전한다는데 두 시간여가 걸린단다.

영기봉에서 기념 촬영을 하는데 갑작스런 미스타 상산 대회 개최.

12시 30분에 영기봉을 출발하여 팔괘문으로 이루어진 정상 한바퀴 등산에 오른다.



<영기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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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산은 태산과는 달리 수 많은 암봉들이 사방 천지에 널려있는데,

그 형상이 금강산을 방불케 하여 눈 즐겁기 한량 없다.

13시경 부익이 준비해온 김밥과 오이지를 곁들여 소주가 어우러진다.

김밥과 오이지가 소주 안주로 제격일 줄이야!



<암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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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시 40분에 점심 완료 후 단로봉에 등정.

정상 말고는 이 곳이 우리가 오르는 최고봉인 듯 싶다.

영기봉에서와는 달리 단로봉에서의 경관은 또 다른 운치를 선사한다.



<단로봉에서 바라본 정상과 암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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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산에도 태산과 마찬가지로 수 많은 글귀들이 바위에 새겨져 있는데

그 중에서도 도덕경 상,하편이 눈에 띈다.



<도덕경 상,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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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시 경 단로봉을 출발하여 오르고 내리기를 수 차례 하며

오봉 선관에 14시 40분에 도착. 팔괘문 중 5-6개 정도는 통과한 것 같다.

정상순환 등산은 이곳에서 끝마치고 부익이 자랑하는 비장의 코스로 하산 시작.

군사 도로를 30분간 따라가다 숲 속으로 들어가는데, 좌우에 낙엽송이

쭉쭉 뻗어 있는 좁은 등산로를 따라 일행은 서둘러 하산.

그 와중에 즐거운 노래 가락도 곁들여진다.



16시 30분경, 길에서 좀 떨어진 계곡에 자리잡고,

흘린 땀도 씻을 겸 일행은 훌훌 벗고 물 속으로 뛰어든다.

몇몇은 남아 있는 소주도 함께 했다.



17시에 다시 하산 시작. 북구수 계곡을 통과하여 출발점과 반대편인

이곳에 와있는 버스에 오른 시각이 18시 10분경.

케이블카와 버스를 타긴 했지만 순수 도보산행만도 7시간이

걸린, 라오산 산행이 끝나는 순간이다.

누군가 라오산 산행은 산보와 같다고 했는데, 부익의 배려(?)로 우리 일행은 호된 산행을 치루었다.

무사히…

아마 잊지 못할 또 하나의 산행으로 기억될 것임에 틀림 없다.



특히 북구수 계곡의 풍경은 계곡의 아름다움은 물론, 수량과 물 맑기도

으뜸이었는데 시간 관계상 그냥 지나쳐 온 것이 매우 안타깝다.



<북구수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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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익이 호스트한 만찬 장소에 19시경 도착하여 또 한번의

성찬과 백주에 곁들여 산우들은 피로함도 잊은 채 황홀경에 빠져들고 있었고,

수 없는 건배속에 중국 산행의 마지막 밤은 깊어 가고 있었다.



다섯 : 완결 (7월 18일)



새벽같이 골프를 치러간 4명을 빼고, 필자 포함 10명이 청도 시내 관광에 나선 시각이 10시 경.

첫 번째 소어산에 올랐는데 70m 높이이니 산이랄 것도 없지만

이곳에 오르면 황해와 청도 제일 해수욕장이 보이고, 전망도 꽤나 좋다.



월요일 오전 시간인데도 해수욕장에 꽤 많은 인파가 해수욕을 즐기고 있었는데,

그 누가 이 곳이 중국이라고 상상할수 있겠는가?

어느 서구 국가나 다름없는 풍경이다. 이런 해수욕장이 청도시에 7개가 있다나!

피로함으로 잔교와 5.4 광장은 버스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하고

독일 총독관저를 구경한 후 해변가 음악 광장에 들러 기념 촬영.



<소어산에서 본 해수욕장과 음악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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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30분경 한식당 경복궁에서 이른 점심을 든다.

삼겹살, 불고기, 김치찌개 등 푸짐한 음식에 소주와 맥주는 기본.

12시 40분경 청도공항으로 출발. 공항에서 골프 갔던 산우와 재회.

청도공항에서 모든 일정을 책임지고 훌륭하게 완수한 부익, 양사장과 작별의 정을 나누고

천진으로 향하는 종기를 빼고 13명이 예정보다 50분 늦은 15시 40분경 서울로 출발.



한국 시간 18시경 인천 공항에 도착하여 우렁찬 목소리로 상산을 외치고 해단식.

각자 그리운 가족들 품으로 들기 위해 뿔뿔이 헤어졌다.

이번 산행이 무사히 끝났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제남의 재용과 그 친지분들,

청도의 부익과 친우에게 다시 한 번 고마움을 전한다.



본 산행기를 쓰는 동안 그때의 순간순간을 되새김하면서 가진 감동과 감흥은

필자만의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끝으로 우리가 잘 아는 시 한 수를 덧붙여 음악과 함께 산행기를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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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0 5 년 7 월 29 일









김 승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