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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6 차 상산회 산행기(북한산:2006.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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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승기 작성일 06-01-22 03:03 조회 12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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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6 차 산행은 북한산 등산코스 중 가장 용이한 코스인 북한산성 매표소

-> 대서문 -> 중성문 -> 중흥사 -> 행궁 -> 대남문 -> 구기동 코스다.



07:00 경 오늘의 안내자인 호경의 전화.

멀쩡하던 허리가 갑자기 고장이 나서 산행이 불가하니 필자더러

안내를 맡아 달란다.

초장부터 낌새가 이상터니 구파발역으로 향하던 중 회장 또한 불참이라는 연락.

원탁 대신 찍사로 수고하던 회장도 없다.



09:15 에 구파발 전철역에 영민을 마지막으로 모인 산우는 지난해 12월 산행시와 같은 6명.

그나마 중국에서 오랜 만에 귀국한 정우가 한 자리를 담당했으니 다행.



참가자 : 김형철, 김상희, 오홍근, 이정우, 방영민 그리고 필자.



구파발 정류장은 인산인해.

한참을 기다려 09:40 에 버스에 오르고 산성 매표소에 도착이 09:55 경.

오늘의 변신 주인공은 형철이다.그동안의 등산복장에서 완전 탈피하여

신발부터 모든 복장이 기능성으로 바뀌었다.

형철의 내자가 친구와 산행시 찍은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아 큰 맘 먹고 개비해 주었다나!

사량도 산행시 거제에서 반겨 주던 종부가 떠오른다.



<매표소에서 바라본 북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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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문을 우회하는 계곡 코스로 산행 시작.

엊그제 내린 비로 계곡의 물은 한여름을 연상시키듯 세차게 흐르고

가끔씩 보이는 얼음과 어울려 봄이 가까워진 듯 한 느낌이다.

날씨 또한 1월 중순에 걸맞지 않게 포근하고 눈이라도 한바탕하면 좋은 날씨.

10:10 경 일행은 두툼한 옷을 한겹씩 벗겨낸다.



<계곡옆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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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는 가끔은 얼음으로 뒤덮힌 곳이 있어 조심조심.

좌로는 노적봉이, 우로는 의상봉이 만든 계곡 따라 오르기를 한참 하다

북한동 마을을 지나 중성문에 10:35 경에 도착한다.



<중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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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성문은 외적에 의해 대서문의 방어선이 뚫릴 경우에 대비하여

병목 구간인 협곡에 숙종 38년에 세워진 문이다.

중성문에서 노적봉을 바라보며 홍근이 거시기 끝 같다고 하는데 아무도 이의가 없다.



<중성문에서 본 노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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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성문을 지나면 계곡에는 물대신 얼음으로 덮여있어 아직은 한 겨울임을 알려준다.

비석거리 옆 계곡에 돌기둥이 남아 있는데 이곳이 산영루 터이며

조선시대 선비들이 암반 위를 흘러 내려가는 물길을 보며 풍류를 즐겼던 곳이란다.

얼음으로 뒤덮인 계곡이 운치를 더해주는데 찍사가 없음이 안타깝다.

중성문을 지나면 평탄한 길이 이어져 산 오르기가 훨씬 쉬워진다.

이것이 이곳에 사람이 기거할 성을 쌓은 이유이기도 하단다.

곳곳에 넓은 평지가 보인다.



10:45 경 노적봉 밑 정자에서 휴식.

상희의 귤과 영민의 달걀이 갈증과 출출함을 풀어주는데

형철이 달걀 껍데기를 벗기느라 고생한다.

형철이 벗기는데 자신 없다고 하자 옆 일행중 여자가 웃음을 짓는다.

각자 벗으면 된다는 뜻인지.



11:10 경 샘터와 중흥사지에 도착.



<중흥사의 옛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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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흥사는 고려의 태조 왕건이 즉위하던 해인 918년에 창건되었다 하며

역사적으로 북한산의 중심 사찰이었다 한다.

중흥사는 조선시대 김시습이 수학을 했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1592년 임진왜란시 서산대사와 사명당이 일으킨 승군의 본부였다고도 한다.

이후 중흥사는 1713~1715년 대대적 중건으로 136칸의 큰 사찰이 되었으나

고종 때 두번의 화재와 1915년 대홍수로 지금은 허물어진 석축과 터만

남아 있으며 최근 복원공사가 시작되었다 한다.



중흥사를 뒤로하고 백운대와 대남문으로 갈라지는 안내판을 지나 대남문 쪽으로 방향을 튼다.

좌로 보면 북한산의 주봉인 백운대와 만경대가 시야에 들어온다.

인수봉은 그 뒤에.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삼각산이라 불리웠던 북한산은 선조들로부터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명산이다.

청음 김상헌이 병자호란 이후 만주족에 끌려가며 지은 시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고국 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수상하니 올동 말동 하여라.”



이제부터 등산로가 얼음판이다.등산로를 벗어나면 눈이 수북히 쌓여 있다.

11:15 경 일행은 한사람만 빼고 아이젠 착용.한 사람이 누군지는 뻔할 뻔자다.

11:20 경 행궁터에 도착. ( 실제 터는 등산로에서 300m 올라가야 됨 )



<행궁의 옛 모습과 행궁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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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 행궁은 남한산성, 화성 행궁과 함께

우리나라 대표적 행궁으로 꼽힌다고 하며 복원 계획이 있단다.

행궁은 숙종 37년 (1711년) 에 지어졌으며 내전과 외전을 합쳐 124 칸 규모였다 한다.

구 한말까지 관리되던 행궁은 일제시 방치되다 1915년 홍수로 일부

쓸려 내려가고 항일 의병이 이곳을 기지로 사용하면서 훼손되다

한국전쟁 당시 완전히 무너졌다 한다.



대동문과 대남문 교차로를 11:30 에 통과하여 대남문을 향한다.

곳곳에 그 옛날 군사시설의 흔적이 엿보인다.

11:40 에 잠시 휴식중 정우의 호도과자와 초콜렛, 홍근의 귤로 입을 즐겁게.



12:20 에 대남문 못미쳐 눈위에 자리잡는다.

먼저 올라갔던 정우와 형철이 뒤늦게 합류하여 6명이

홍근의 완자, 형철의 오뎅전과 배, 상희의 김밥, 영민의 곶감,

정우의 귤, 필자의 연어회를 앞에 두고 준비한 막걸리와 소주로 건배.



주당 몇몇이 빠지니 막걸리 두병과 소주 한 병 처리가 만만치 않다.

연어가 노화 방지에 좋다는 필자의 말에

일행은 늙음에 대해 진지한 토론에 들어간다.

노화 방지에 효과가 있으나 젊음을 되찾을 수 없음이 안타까워서 인가?



13:10 경 자리를 파하고 대남문을 거쳐 구기동으로 방향을 잡는다.

대남문을 지나면 등산로는 완전 봄이다. 질척거리기 까지 한다.

분주히 발길을 옮겨 구기동 터널 근처 쉐레이 암반수 싸우나에 14:35 도착.



피곤해서 한숨 자고 가겠다는 형철을 싸우나에 두고

15:30 경 5명이 “그 때 그 민속집” 에 자리잡고 앉아 뒷풀이.

간장 게장과 한방 보쌈, 그리고 비지와 청국장 곁들여 지고 동동주와 소주가 어우러진다.

산행 인원이 적으면 뒷풀이가 풍성해 지는 법.

간만에 맛깔스런 뒷풀이를 끝내고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한 시간이 16:30 경.



금일도 무사 산행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눈이나 내렸으면.





2 0 0 6 년 1 월 22 일







김 승 기